[기고]OBS에 봄은 오는가?
우리가 이 봄에 바라는 것은 OBS의 방송 정상화와 노사 간 신뢰와 협력



OBS노조는 2월 28일 오후 7시 부천시 오정동 OBS 사옥 앞 주차장에서 출정식을 갖고 투쟁을 시작했다.ⓒOBS희망조합지부

9일 아침부터 조합 사무실에 난이 배달됐다. 어라? 웬 난? 누구지? 송장에 사인을 하려는 순간, 보낸 사람 이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사장이었다. 새 지부장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윤승진 사장이 보낸 난이었다. 뭐지 이건?

시간을 되돌려 2월로 돌아가 보자. 전국언론노동조합 OBS희망조합지부(이하 조합)은 지난 2월 28일 창사 이래 최초의 파업투쟁에 돌입했다. 2012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이 결렬된 때문이었다. 파업에 돌입하기 8일 전인 2월 20일 OBS의 현 대표이사인 윤승진 사장이 취임했다.

윤승진 사장이 취임한 이 날은 경기지노위에서 마지막 3차 조정회의가 있던 날이었다. 조합은 3개월 동안 진전이 없던 교섭이 실질적 권한을 가진 새 사장이 오면 잘 풀릴 거라 기대했다. 당시 경영진들도 자신들의 책임을 미루며 그렇게 주장하던 터였다. 윤 사장은 취임 한 달 전에 이미 이사회와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거치며 사장으로 선임돼 있었고, 취임을 앞두고 약 한 달 동안 OBS 현안 보고를 받아 왔었다. 당연히 임단협 쟁점과 경과도 알고 있었다.

조합은 새 사장에게 기대를 걸며 취임 축하 난을 보냈다. 조합에서 사장 취임 축하 난을 보낸 것은 이때가 최초였다. 그만큼 꼬인 문제를 풀고, 임단협을 타결하자는 조합의 강한 메시지를 담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조합의 순진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지노위는 결국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렸다. 취임 축하 인사 차 찾아가 잘 해보자고 건넸던 인사말이 무색해졌다.

지노위 조정 중지 결정 이후 윤 사장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달라고 했다. 회사 현안을 좀 파악하고 만나서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마주한 테이블에서 윤 사장은 임단협 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전임 사장 3명을 OBS를 망친 3적으로 규정하며 역정을 내기까지 했다. 결국 수많은 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들어가게 됐다.

파업에 들어가서도 윤 사장은 단 한 번도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언론노조의 출입도 막았다. 윤 사장의 적대적 노조관이 그대로 드러났다. 결국 조합은 3주간의 파업투쟁을 뒤로 하고 방송정상화를 위해 업무에 복귀했다. 조합의 업무 복귀 후에도 윤 사장은 부당노동행위를 계속하며 징벌적 노조 탄압을 이어 나갔다.

조합원들의 고통 속에서도 조합은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노력을 끝까지 계속했다. 그 결과 임단협은 타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사측이 근무지침과 업무배제를 풀지 않겠다고 고집했고, 과거 3년간의 체불임금 청구 포기 동의서마저 요구해 성사 직전의 임단협 판은 깨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임단협이 해결되지 않은 채 노사 갈등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사실상 사장 한 명에 방송사의 운명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단계 투쟁을 선포하고 있는 OBS노조ⓒOBS노조


이런 상황에서 지부는 비대위 체제를 종료하고 새 지부장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어제 새로운 지부장이 선출되었다. 오늘 아침 사장이 보낸 당선 축하 난을 보고 놀라고 어이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스토리 때문이었다.

방송사에서 사장 한 명의 역할과 비중은 매우 크다. 김재철의 MBC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김재철씨가 MBC 사장으로 있는 동안 MBC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수십년 동안 조합원들이 쌓아 올린 공정방송도 무너졌고, 최장기 파업으로 조직 내부의 상처도 깊다. 김종국 사장이 새로 취임했으나 해고자 문제와 공정방송, 조직 추스르기 등 산적한 현안을 어떻게 해결할 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OBS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방송사 사장이 단순히 경영뿐만 아니라 편성, 제작, 보도에 이르는 콘텐츠 전반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장 한 명에 방송사의 운명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사장은 지난 4월 15일 취임 후 첫 정기개편을 시행했다. 윤 사장의 첫 작품인 이번 개편에서 크게 두드러지는 것은 자체제작 축소와 높은 재방 이상의 편성비율이다. OBS가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낼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편성의 대부분이 구매와 외주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고 그 마저도 재방 이상의 방송이 많다는 것은 OBS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으로 회사의 경쟁력을 확보할지 경영학 박사인 사장의 의중을 이해하는 구성원은 아무도 없다.

OBS 노조가 창사 이래 첫 파업투쟁을 벌인 이유도 누적된 무능경영과 직결된다. 경영진의 무능은 회사 수익구조와 노동조건 악화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임금인상도 없었던 탓에 실질임금은 계속 하락했고, 이 와중에도 조합원들은 회사를 위해서 임금의 10%를 자진 반납하고 승호를 정지하기도 했었다. 무능한 경영진은 조합원들의 희생을 강요했고 어느덧 이를 당연시하기에 이르렀다.

임직원 합쳐 240명 수준의 회사에서 지난 5년 동안 누적된 퇴사자만 100명이 훨씬 넘는다. OBS에 청춘을 바치고 인생을 걸고 있는 유능한 조합원들에게 경영진은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그리하여 희망을 안고 OBS를 위해 신명나게 일하자는 것이 조합이 파업을 했던 이유였다.

오늘 오전 배달된 난을 보면서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방송파행과 노사관계 파탄의 책임자인 윤승진 사장이 보낸 난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뭐지 이건?’ 하는 생각은 너무나 당연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따스한 기운과 푸른 내음을 가득 머금고, 우리들 마음에도 이 봄이 찾아오길 바란다. 우리가 이 봄에 바라는 것은 OBS의 방송 정상화 그리고 노사 간 신뢰와 협력이다. 조합이 윤 사장에게 보냈던 난은 조합원들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연애편지였다. 오늘 윤 사장이 보내 온 난이 우리의 연애편지에 대한 화답이기를 바란다.

<박철현 전국언론노동조합 OBS희망조합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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